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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고이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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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티타카


민간 수송기 보트-752호는 뜨거운 바람으로 엔티타카의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헤집고 난 뒤 멀리 달아났다. 달아난다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고 엔티타카는 생각했다. 한 번 떠난 수송기는 다시 돌아오는 법이 없으니까. 

엔티타카의 몇 걸음 앞에 있던 U-20307은 바람이 그치자 자신의 손목 스크린에 임무 완수 메시지를 입력했다. 

「보트-752, 어시안 268인. 전송 완료.」

저쪽에서 긍정의 뜻을 알리는 짧은 삐 소리가 세 번 들려왔다. 터미널로부터의 회신이다. U-20307과 엔티타카에게 동시에 도착한 문자 메시지가 손목 스크린을 둥글게 감싸며 흐른다. 

「보트-752 SQ-2.」

‘수송기 보트-752호가 광장에서 오늘 제2광장에서 이륙했음을 확인함’이라는 뜻이다. 책임자인 U-20307과 증인 엔티타카가 확인을 뜻하는 녹색 버튼을 누르면 오늘의 민간인 전송 임무는 종료된다. 이제부터는 방금 터미널로 달아난 그것에 꼭 1이 더해진 숫자가 새겨진 새 수송기가 나타날 ‘바람이 고이는 날’을 기다린다. 지난번에도 그 지난번에도 그랬듯이.  

지구에서 살 수 없게 된 지 위성력(衛星曆)으로도 이미 셀 수 없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시안(Earthian)이라는 이름을 권력의 대명사로 사용하고 있는 인류는, 이 위성을 Q라고 이름 붙였다. 그들의 최고 권력자에게 붙던 이름인 퀸(Queen)의 맨 앞 문자를 따온 것이라 했다. 

모성의 변방을 뻔뻔할 만큼 느리게 회전하는 위성 Q를 어시안이 처음 발견했을 때는 모두가 이곳을 천국이라고 했다. 엔티타카가 인식하는 천국의 의미는 ‘어시안의 생명 유지가 종료된 후 갈 수도 있다고 그들 스스로 믿는 곳’이었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그들이 어떤 기분으로 그런 단어를 골랐는지는 알 것 같았다. 엔티타카는 어시안을 위해 Q에서 15년간 복무해 온 통신 안드로이드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문자는 프로그래밍된 사전적 의미와 꼭 같지 않아도 대체로 엔티타카가 이해 가능한 범위 내에 있었다.

어시안은 언어를 중요하게 다루었다. 엔티타카는 제조된 이래 그들이 정보와 기록에 지나친 강박을 보인다고 느껴 왔다. 안드로이드와 달리 각체의 정보값인 ‘문자 이름’을 모든 어시안이 소유하는 것부터, 크고 작은 단위로 모인 그들을 서로 연결하는 통신 시스템, 그리고 생존에 관한 방법을 기록하고 분류하고 발전시키는 것까지 언어가 작용하지 않는 영역은 없었다. 온종일 그것을 위해서만 사는 종족 같았다. 

생활하며 기록하고 말하고, 말하고 기록하며 생활하고. (어시안은 생존보다는 생활이라는 단어를 더 선호했으나, 엔티타카는 그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고는 여기지 않았다.) 홀로일 때도 여럿일 때도 그들은 어떤 형태든 언어 없이는 살지 못했다. 언어는 그들의 모든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엔티타카도 그 역할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였다.

어쨌든 천국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Q는 모든 계절이 22℃의 기온과 습도 47%로 유지되는 이상적인 별이었다. 그 숫자들은 엔티타카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텍스트에 불과했으나, 어시안에겐 웃고 울 만한 이유였다. 엔티타카의 데이터베이스에는 그 숫자가 지나치게 크거나 작아져 지구에서의 생존이 더는 불가능해졌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어시안의 표정은 이곳에서 ‘행복’이라는 문자가 뜻하는 모양에 가장 근접해 보이는 것 같았다.

다만 어시안 상관이자 행정부 장관 넬라는 바람이 없는 것이 조금은 아쉽다고 했다. 평화로운 Q를 떠도는 기체는 성질이 지나치게 온순해서 아주 옅은 바람이 될 줄도 모른다고, 예전 다른 행성에서는 어렵지 않게 경험했던 그 시원하고 간지러운 감각이 가끔 생각난다고 했다. 엔티타카에게 ‘생각난다’는 ‘기억하다’의 유의어였지만, 넬라가 말한 그것은 ‘그립다’와 같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엔티타카도 저도 궁금해요, 라고 대꾸했었다. 어시안은 그리움에 동조해 주면 미소를 짓곤 했다. 엔티카타는 입술을 살짝 당기는 행위인 그것을 좋아했으나, 안드로이드에겐 흉내 내기 어려운 어시안 습관이었다. 엔티타카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어시안은 무뚝뚝하다고만 했다.

수송기는 Q를 떠날 때마다 막대한 에너지를 배출하며 뜨거운 바람을 일으켰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수송기가 떠나는 날을 ‘바람이 고이는 날’이라 불렀다. 넬라가 말한 바람은 아마 이런 게 아니었겠지만, 어시안들은 수송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없는데도 일부러 광장에 나와 몇 번 남지 않은 그 바람을 실컷 쏘이곤 했다. 오늘도 구경꾼이 많았다. 구경꾼이자, 하루빨리 명단에 이름이 등록되어 더 이상 천국이 아닌 이곳을 떠나고 싶은 어시안들. 

“넬라가 부르는데, 너.”

U-20307이 엔티타카를 불러 세웠다. U-20307은 엔티타카를 늘 ‘너’라고 불렀다. 숫자가 아닌 문자 이름을 쓰는 안드로이드는 극소수다. 생산된 라인의 문자와 숫자 조합의 이름을 가진 안드로이드와 다르게 ‘엔티타카’라는 이름은 일종의 오류였다. 대부분의 안드로이드는 오류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엔티타카는 정확한 이름으로 불리는 일이 거의 없었고, 상대가 그렇게 해 주길 기대하지도 않았다. 어시안이라면 아마 이것을 ‘오류’보다는 ‘질투’라 불렀을 거라 짐작할 뿐이다. 문자 이름을 가진 안드로이드는 대부분 어시안의 남다른 애정을 받기 때문이다. 

사랑. 실체는 없으나 누군가가 이름을 불러 주는 목소리나 웃음 따위의 잔상으로 남는 것. 넬라가 그리워하는 시원하고 간지러운 바람도,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사랑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엔티타카는 그 단어를 들을 때마다 가끔씩 생각했다. 

“지금입니까?”

“응, 지금.”

“왜 직접 통신하지 않으시고 U-20307을 우회했을까요?”

“네 신호가 안 잡힌대.”

U-20307의 말대로였다. ‘수신 오류’ 알림이 스크린에  깜빡이는 중이었다. 버튼을 몇 번 연달아 누르자 그제야 넬라가 보냈을 메시지가 밀려들었다. 내용은 U-20307이 전달한 것과 같았다. 지금 바로 면담이 있으니 장관실로 오라는 통보였다. 

U-20307은 벌써 숙사를 향해 저만치 걸어가 있었다. 엔티타카가 가야 할 방향은 그 반대였다. 


“몸이 많이 안 좋아? 엔티?”

행정부 장관 넬라는 안드로이드에게도 인간을 빗대기 좋아했다. 원활하지 않은 통신 상태를 몸이 아프다 하거나, 그들처럼 이름을 줄인 애칭을 부르거나. 

“회복 센터에 즉시 방문할 예정입니다.”

넬라가 가리킨 의자를 바라보기만 하며 엔티타카가 대답했다. 

“그건 당연하고. 대화할 수 없으면 곤란하니까 말이야.”

넬라의 시선이 끈질기게 엔티타카와 의자의 사이를 오갔다. 통신 장비의 힘을 빌리지 않은 대화가 조금 길어질 예정이라는 뜻이다. 다리는 언제나처럼 조금도 피로감을 몰랐지만 엔티타카는 상관의 명령에 따르기로 했다. 그래야 그녀는 엔티타카가 더 잘 경청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역시 엔티타카가 오랫동안 숙련해 온 몸짓 언어다. 그래도 넬라가 다른 손님이 왔을 때처럼 차까지 내지는 않으리란 것쯤은 안다. 

“새 임무를 알릴게, 엔티.”

“말씀하세요.”

“앞으로 Q를 떠날 수송기는 모두 3대가 남았지?”

“그렇습니다.”

보트-755가 어시안을 위한 마지막 수송기 번호가 될 것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아주 간단한 수식만 적용하면 행정 관계자나 안드로이드가 아니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계산이었다. 누가 먼저이고 나중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Q는 어시안 타임으로 2개월 이내 먼지 폭풍으로 뒤덮이게 된다. Q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또 다른 위성 아스마는, 현재 빠른 속도로 돌진해 오고 있는 운석에 충돌하여 거대한 폭발을 일으킬 예정이다. 아스마는 척박한 별이라 어시안이 거주할 수 없어서 인명 피해는 없겠지만, 문제는 그 폭발로 인한 잔해와 먼지가 온통 Q로 쏟아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약 백여 년의 짧고도 찬란한 시간을 선사했던 천국이 맞이하게 될 새 이름은 폐허였다. 

Q의 행정부와 엔티타카가 할 일은 종말이 몰아닥치기 전 어시안들을 모두 모성인 터미널로 이주시키고, 마지막 수송기인 보트-755호에 탑승하는 것이다. 엔티타카도 거기에 탑승하기로 되어 있다. 

오늘 넬라가 이 임무를 전달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엔티는 보트-755에 타지 말고, BF를 이용해 줘.”

“BF 말입니까?”

BF란 보트 시리즈 같은 대형 수송기가 아닌 1인용 초경량 비행선을 부르는 말이다. 보트는 어시안이 오래전 소유했던 바다라는 것을 그리워하며 여전히 잃지 못한 단어 가운데 하나다. 더 이상 바다 없는 땅에 살면서도 인류는 보트를 하늘에 띄워 올려 문자의 의미를 바꿨다. BF도 비슷했다. 아주 연약하고 얇은 날개를 가진 나비(Butterfly)라는 곤충의 이름을 따왔다. 나비는 현재 시점에서는 우주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멸종된 생물이다. 

어쨌든 BF 시리즈는 엄격한 심사 후 허가가 내려져야만 탈 수 있다. 간혹 명령에 불복하고 어시안의 불법적인 협조를 받아 소속처에서 탈주하는 안드로이드도 있기 때문이다. 즉, 이것은 엔티타카를 상부가 신뢰한다는 의미였다.

“파이널이 되어 샘플을 채취해 주었으면 해. 엔티타카.”

파이널은 말 그대로 파이널(Final)이다. 재난의 순간, 위험을 버틸 수 있는 최후까지 남는 존재. 극한의 위험 상황에서 탈출하기 직전, 어시안의 생존 연구에 필요한 샘플을 재빠르게 모아 챙기는 역할이다. 

이 임무는 보통 안드로이드에게 맡겨진다. 극한의 온도와 독성에도 해를 입지 않는 신체의 소유자들은, 견딜 수 있는 만큼 최후의 정보값을 온몸으로 입력하고, 이제 한계라는 판단이 설 때 BF에 탑승한다. 

이론상으로는 그러하지만 이런 경우 안드로이드는 열에 아홉 파손되며, 나중에 어시안이 건지는 것은 샘플과 안드로이드 내부에 있는 블랙박스뿐이다. 엔티타카도 다른 U 시리즈들에게 들은 적이 있어 대강의 흐름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임무는 어시안이 안드로이드를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일 때 가능하지 않을까 엔티타카는 생각했다. 어시안이 말하는 애정까지는 도달할 수 없어도, 안드로이드가 비로소 어시안을 신뢰했을 때 할 수 있는 일. 하지만 막상 그 순간이 오니 자신이 그만큼 어시안을 좋아하는지는 의문이었다. 아니라고 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도 없었다. 안드로이드에겐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호의는 무조건적인 복종의 상황이 아닐 때에야만 싹틀 수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 강력한 동기인 임무가 내려졌기에 엔티타카는 호의에 대해서는 더 생각하지 않고 곧장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낙점된 이유도, 하다못해 방법도 묻지 않고 엔티타카는 가벼운 미소로 긍정을 표했다. 넬라는 엔티타카의 그 표정이 오랫동안 같은 과목을 공부해 온 모범생의 학습된 미소라는 걸 알았다. 비록 상대는 안드로이드이고, 저 미소조차 안드로이드가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임을 알아도 넬라는 좀 더, 좀 더 진심이 섞인 미소를 보고 싶었다.  

“임무가 끝나면 엔티를 책임자로 추천할까 해. 증인으로 오래 일해 왔으니까, 이제 승진해도 되지 않겠어?”

“감사합니다.”

승진 제의에도 엔티타카의 행복 수치에는 차이가 없었다. 그저 상관의 ‘가도 좋아’라는 말을 바라는 표정만은 솔직하게 드러났다. 어디 가고 싶은 곳이라도 있는 사람의 얼굴과도 비슷했다. 그래서 넬라는 그렇게 해 주었다. 엔티타카는 몸에 붙었던 벌레라도 떼어내듯 의자에서 일어나 행정관실을 나섰다. 


엔티타카가 향한 곳은 회복 센터가 아닌 사이언 구역이었다. 회복 센터에 간다고 해도 결함이 발견될 가능성은 희박하므로 부품 점검은 생략하기로 했다. 

엔티타카는 어시안들이 소위 말하는 직감에 따라 계단을 올랐다. 사이언 구역은 이미 수송기 100번 대에 단지 전체가 비워진 고급 주택가였다. 원활하지 않은 통신 모드는 잠시 꺼 두고, 엔티타카는 손바닥의 열 감지 모드를 열었다. 이 단순하고 오래된 기능을 사용할 일은 거의 없어서, 처음엔 이런 기능이 있는 줄도 몰랐다. 소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얘기 좀 해요, G.”

3층의 09호실 문을 열며 엔티타카가 목소리를 냈다. 15년 전 처음 세팅된 그대로, 건강한 성인 여성의 선명함과 안드로이드 특유의 절도가 섞인 음성이었다. 

“G? 여기 있는 거 다 압니다. 체온 센서 작동했어요."

“G라고 부르지 마.”

소녀가 부엌에서 아이스크림 통을 들고 나타났다. 녹은 액체가 아닌, 냉기를 피워 내는 제대로 된 아이스크림이었다. 소녀의 손바닥과 입 안, 식도와 이어지는 상반신의 중간 지점까지는 체온이 푸르게 감지되었다. 전기가 완전히 끊긴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집 안에 흐르는 전자기파가 어렴풋이 느껴졌다. 

“이 집 대박이야 로봇. 대용량 개별 전지 있어서 아직도 냉장고 돌아.”

먹을래? 라고 물으려다 만 표정을 엔티타카는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어시안은 연령이 낮을수록 얼굴에 드러내는 정보가 더 풍부하다. 소녀의 연령은 14라고 했다. 햇수로 치면 엔티타카와 비슷했다. 어시안 정보 챕터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낮은 연령은 적은 인내와 대체로 비례한다. 소녀는 늘 협조와는 거리가 멀었기에, 엔티타카는 별다른 통보 없이 소녀에게 성큼 다가가 손목 스크린으로 상체를 탐색했다.

“으악, 간지러!”

허리께에서 삐이 하는 날카로운 음이 잡혔다. 역시. 바지와 벨트의 틈에 펜 한 자루가 끼워져 있었다. 통신 장애의 원인을 찾았다. 개조한 교란 장치일 것이다.

“상부에 보고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죠?”

“안 할 거잖아. 로봇.”

“엔티타카입니다.”

“나도 G 아냐.”

“그럼 정확한 이름을 전달해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이니셜을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름이 없는걸.”

벌써 몇 번이나 거쳤던 장난을 즐긴 소녀는, 흰 아이스크림을 숟가락 가득 떠 입에 욱여넣었다. 엔티타카는 펜을 꺾어 부러뜨렸다. 동시에 손목 스크린으로부터 이어진 회로에 끼었던 잡음이 사라지는 상쾌한 감각이 찾아왔다. 아이스크림도 어시안에게 이와 유사한 감각을 주는 것이 아닐까 엔티타카는 잠시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어시안으로 등록하고 생존 신고 하면 755에 탑승할 수 있어요.”

“보트는 무조건 터미널로 가잖아.”

“네.”

“그럼 그 인간한테 보내질 거잖아. 게이트 통과할 때 유전자 검사에서 바로 걸릴 테니까.”

“생물학적 보호자가 양육 권한의 우선순위에 있으니까요.”

“몰라. 난 그게 싫고, 그러니까 그냥 여기 있을 거야.”

Q에 남겠다는 것은, 생명 유지를 스스로 종료시키겠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그것을 뜻하는 분명한 단어를 엔티타카도 알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는 출력하지 않았다. 

“유독가스에 반 시간도 채 못 버틸 겁니다.”

“터미널 가는 거보단 나아. 로봇도 먹을래?”

일부러 말했다. 불가능에 대한 강력한 의사 표현이었다.

“괜찮습니다.”

“나도 괜찮아. 로봇. 그러니까 그만 신경 꺼 줘.”

“통신만 방해하지 않는다면 그럴 겁니다.”

이렇게 경고했어도 755 수송기가 뜨기 전 소녀는 또다시 장난을 쳐 올 것이다. 

소녀는 우연히 발견한 주파수가 엔티타카의 통신을 방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종종 이렇게 불러내 실없는 대화를 주고받기를 좋아했다. 어시안이 쓰는 말 중에 숨바꼭질이라는 것과 비슷했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꼭 들어맞는 표현은 아직 찾을 수 없었다. 엔티타카의 프로그램 안에 적합한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소녀가 외롭다는 사실만 짐작할 뿐이다. 

현재 Q에는 소녀의 또래가 아무도 없다. 미성년을 포함한 가구는 우선순위로 Q를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녀는 등록되지 않은 어시안이므로 그 조건에 부합하지 못했다. 엔티타카도 정확한 이유는 몰랐다. 어시안에게 혼외자는 늘 존재하는 통계의 한 축이었기에, 그런 종류가 아닐까 추론했다.

그러나 폐허를 앞둔 지금은 그 아이들을 방관했던 보호자들조차 뒤늦게라도 등록을 마치고 탑승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빨리 Q를 벗어날 수 있으므로, 아이들을 기회로 이용했다. 만약에라도 일이 더 빨리 닥쳐올 경우를 대비하여. 하지만 소녀의 유일한 생물학적 보호자 남성은 30번 대 보트를 타고 벌써 터미널로 달아났으며, 그는 과학부의 고위 직책을 가진 어시안이라고 했다. 소녀는 그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엔티타카도 소녀가 터미널행을 거부하는 이유를 인식하고는 있었다. 소녀의 생물학적 보호자는 이 평화로운 위성의 지루함을 감당 못하던 순간순간, 소녀를 폭력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했다. 온화한 날씨가 모든 어시안을 충만하게 해 주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그 어시안 하나를 피하기 위해, 과연 소녀가 생명을 포기해야 하는가? 그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어시안인가? 엔티타카에게는 의문이었다. 소녀를 보호할 수 있는 다른 어시안은 없는가. 어째서 어시안은 동일한 유전 정보에 이다지도 집중하는가. 이해하기 힘들었다.

안드로이드에게는 모든 어시안을 존중하라는 기본 명령이 입력되어 있었으나, 그들이 말하는 존중의 분명한 개념을 확신할 수 없을 때가 종종 있었다. 과연 어시안 그 자신들도 그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일까 의심스럽기도 했다. 유일한 보호자라는 이유로 학대 당한 아이를 다시 그에게 돌려보내는 것이, 어떻게 존중이라는 개념과 연결되는 것인지도. 

“근데, 언제 가는데? 755는?”

“아직 시일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길어 봤자 2개월 이내인 것은 소녀도 엔티타카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2개월 내 아스마는 언제라도 박살 날 수 있다는 사실도. 

“로봇도 거기 탄댔지?”

“아니오. 저는 다른 임무가 있어요.”

그 말에 아이스크림을 파헤치던 손목이 멈췄다. 소녀가 알기로도 보트-755는 마지막 수송기였다. 그런데 엔티타카는 거기에 타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소녀


안드로이드가 밟고 서 있던 곳을 손으로 더듬어 보면 은근한 온기가 남아 있다. 어시안의 체온과는 다른, 기계가 놓였던 자리의 뜨끈함이지만 어쨌든 소녀는 그 잔열을 좋아했다. 그래서 엔티타카가 떠나고 나면 그곳에 잠시간 몸을 말고 모로 누워 곧 닥칠 폐허의 모습을 상상했다.

예정된 죽음은 두려웠다. 굳이 비교하자면 생물학적 보호자의 퇴근 시각 즈음부터, 문밖 복도에 익숙한 발자국 소리가 울리기 전까지의 고요한 1시간, 그 끔찍한 시간과 비슷했다. 지금 당장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일어날 것이 분명한 비극을 무력하게 기다리는 일. 

그러나 몇 번을 생각해도 지금이 나았다. 그땐 아이스크림도 없었으니까. 생물학적 보호자가 말하길 과거 어시안은 집에 다른 종의 생명체를 키웠는데, 소녀는 그것과 비슷한 거라고 했다. 그것에게는 최소한의 생명 유지 수단만 공급하는 거라고. 그 생명 유지 수단에 물론 아이스크림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가 출근하면 소녀는 홀로 남은 집에서 그의 물건들을 가지고 놀았다. 그의 작업대에는 통신 장비나 작은 기계 부품이 무질서하게 널려 있었는데, 소녀는 어느 날 그 안에서 질서를 발견했다. 몇 번의 실패를 거쳐 소녀는 그럴듯한 통신기기를 조립할 수 있게 되었다. 그와 소녀는 같은 유전자로 구성되어 있었으므로, 필연적으로 발현할 수밖에 없는 재능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소녀는 생물학적 보호자와 유전자가 동일하나  어시안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의 유전자를 복제한 클론이기 때문이다. 비록 생성된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으나 모든 능력치는 열네 살의 어시안과 다르지 않았으며 지능적으로는 약간 더 뛰어나기도 했다. 

그가 터미널로 달아나고 나서 비로소 소녀에겐 천국이 찾아왔다. 도시는 빠른 속도로 비워졌다. 덕분에 소녀는 바깥으로 나갈 수 있었다. 소녀를 알아보는 이도 없었으며, 빈집이라면 원하는 곳에서 먹고 잘 수 있었다. 문자 그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만약 닥쳐올 폭풍이 없고, 그가 달아나지 않았다 해도 소녀는 감금 생활을 오래 견디지 않았을 거라 확신했다. 일부러 가르쳐 주는 이가 없어도 그 정도는 스스로 알 수 있었다. 아무리 클론이라 해도 어시안과 같은 육체를 가졌기에 욕망과 인내심의 평균 또한 비슷했다. 대체로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에 의심이 적을 수밖에 없는 안드로이드와는 분명히 다른 특징이었다. 

그렇기에 클론은 좀 더 엄격하게 생산되고, 관리되고, 처리된다. 과학자 개인의 욕망으로 태어난 불법의 몸으로 다시 그를 찾아가라니. 결과는 여기서 맹독성 폭풍 맞기를 기다리는 것과 별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시안으로 속여 수송기에 탑승해 Q를 벗어나 터미널로 간다 해도, 그를 만나기도 전에 당국에 먼저 적발될 확률이 높다. 그리고 허가 받지 않은 클론이니 곧장 처리 절차를 밟게 될 것이다.

이러나 저러나 결과가 같다면 이동하는 불편을 굳이 감수할 이유가 없다. 엔티타카 말대로 반 시간의 고통만 견딘다면 존재한 적 없는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으므로.

그런데 엔티타카가 파이널이 되었다는 소식은 흥미로웠다. 파이널이라는 역할이 있다는 건 사실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그야말로 어시안다운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단순한 지적 호기심이든, 더 나은 번영을 위해서든, 모든 소유욕과 집요함을 최후의 순간까지 발휘하는 존재가 어시안이라고 소녀는 다시 절감했다. 자신도 그런 과정에서 태어났기에 누구보다 잘 알았다. 생물학적 보호자는 사고로 잃어버린 딸을 복제하고 싶었고 꿈꾸던 완전한 복제가 불가능함을 깨닫자마자 미련 없이 소녀를 버렸다. 인격적으로도, 종국엔 물리적으로도 버렸다. 어쩌면 크게 이상할 것도 없다. 어시안은 원래 이것저것 잘 버린다. 버리는 기술 자체도 상당히 발달한 종족이었다. 

그나저나 엔티타카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이제는 식어 버린 먼지투성이 카펫을 쓰다듬으며 소녀는 생각했다. 행정부가 과연 엔티타카를 제대로 구출해 줄까? 그들이 원하는 정보를 획득한다면 물론 죽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겠지만, 만약 엔티타카가 작은 실수라도 해서 임무에 실패한다면? 그래도 어시안은 엔티타카를 무사히 Q에서 빼내 줄까? 사위가 화염과 스모그로 둘러싸인 재난 상황을 피부로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고통스럽긴 할 것 같았다. 생물학적 보호자가 뺨을 내리쳤을 때 느꼈던 통증과는 비교할 수는 없을 거야. 소녀는 떠올릴 수 있는 최대한의 고통을 생각해 보았다. 그래도 여전히 그날이 오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사이언 구역에는 보조 전력도, 좋은 부품도 많다. 엔티타카가 부순 펜 모양의 장치는 그만 잊고, 소녀는 새로운 장난감을 다시 만들어 냈다. U 라인의 안드로이드가 장착한 스크린 장치를 흉내 내, 손목시계 모양으로 만들어 왼팔 손목에 감았다. 

이번에 소녀는 방해가 아닌 통신의 형태로 엔티타카를 찾아냈다. 다른 안드로이드보다 유난히 방화벽이 강한 U 라인의 통신망을 뚫는 순간은 언제나 짜릿하다. 

「키티(Kitty)」

소녀는 손목시계의 한 뼘 위로 가상 기판을 띄워 문자 다섯 개를 입력했다.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곧 전송 완료 신호가 돌아왔다. 제대로 작동했다. 

「G?」

이쪽의 신원을 확인하는 엔티타카의 회신이 왔다. 이런 식으로 엔티타카를 침입할 사람은 Q에는 이제 소녀밖엔 없다.

「키티. 내 제작자가 날 부르던 이름이야.」

엔티타카의 회신이 없다. 아마 제작자라는 새로운 정보를 처리할 시간이 필요해서일 것이다. 소녀가 메시지를 이어 갔다. 

「제작자이자 생물학적 유전자 제공인. 난 어시안이 아니라 클론이거든. 말 안 했던가?」

당연히 말한 적 없으면서 그렇게 물었다. 제작자와도 어색한 순간에는 질문을 던지면 분위기가 조금은 나아지곤 했던 기억을 되살렸다. 그나마도 아주 잠깐의 좋았던 시절의 일이지만. 

이번에도 소녀가 기판을 두드려 메시지를 입력했다. 

「생체 성분은 어시안이랑 같아.」

「압니다. 그리고 미등록 클론이죠.」

「똑똑하네, 로봇.」

「보건국에 통보할 겁니다.」

「정말?」

「재난 상황을 앞두고 있다 해도 정부 기관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으니까요. 당연히 그래야 하고요.」

「야박하네, 로봇.」

여기서 다시 한 번 로봇이라고 부른 건 실수라고 생각했다. 이어지는 엔티타카의 메시지가 조금 빠르고 격해졌다. 

「비상인 시기에 지속적으로 시도한 통신 방해에 대해서도 죄를 물을 겁니다.」

글자 속 엔티타카는 화난 듯 보였다. 안드로이드에게도 그런 표현이 적당하다면 말이다. 지금까지 진실을 밝히지 않고 가엾은 어시안인 척해서 이러는 거라면, 소녀도 할 말은 있다. 두 달 뒤에 화염과 독가스 속에서 송장이 될 운명은 충분히 납득하지만, 이 천국 같은 휴가 기간에 끌려가 마취총을 맞고 소각 장치에 들어갈 계획은 추호도 없다고. 아무리 결과가 같다고 해도 생명을 종료하는 방식은 스스로 정할 거라고.

「엔티타카.」

일부러 이름을 또박또박 입력했다. 단호한 음성을 활자에 그득 담아. 그리고 대답이 돌아오기 전에 빠르게 메시지를 붙였다. 

「이런 건 방해가 아니라 소통이라고 해. 네 프로그램 안에도 그런 단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없겠지 아마.」 

할 말만 남기고 소녀는 통신기의 전원을 껐다. 가벼운 재질의 가방에 몇 안 되는 짐들을 챙겼다. 호화로운 냉장고들을 두고 떠나야 하는 것은 비극이지만 만약에라도 보건국 담당자가 나타나기 전에 놀이터를 즉시 옮겨야 한다. 소녀는 아이스크림을 크게 한 숟가락 떠서 입 안 가득 물고, 사이언 구역을 벗어났다. 바깥의 날씨는 언제나 그랬듯이 온화했다. 재난이라는 말은 조금도 모르는 순진함이었다. 


‘바람이 고이는 날’이 두 번 더 지났다. 

광장은 조금만 높은 건물 위로 올라서면 어디서든 잘 보였기에 소녀도 그날이면 멀찍이서 보트의 위력을 지켜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다른 어시안처럼 광장에 직접 가서 웅장하게 내려앉고 이륙하는 보트의 곁에서, 맞아도 죽지 않을 바람을 느껴 보고 싶었지만 소녀에겐 시기상조였다. 

기회는 한 번이다. 마지막 보트인 755호가 뜨는 날. 이곳에 어시안도, 고용된 안드로이드도 누구 하나 남지 않는 날. 만약에라도 자신을 사로잡을 존재가 아무도 없는 날. 파이널을 제외한다면.

제작자에게 바람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Q는 공기의 성질이 온화하고 느긋하기만 해서 아무리 부채질을 해도, 초고속 달리기를 해도 바람의 저항이 피부로는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얇은 플라스틱 판으로 작은 프로펠러를 만들어 원리만 설명해 주었는데, 결국 바람에 대한 소녀의 궁금증만 더 크게 키워 놓고 말았다. 그게 목표였다면 제대로 작동한 셈이기는 했다. 소녀가 죽음을 앞두고 얻고 싶은 단 한 가지는, 바람이 되었으니까.

보트-754가 떠나는 순간, 광장에 남은 어시안과 안드로이드의 머리카락이 일제히 나부꼈다. 어느 수송기 없이도, 그 머리카락이 날개가 되어 모두 당장이라도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 모두가 공중에 떠올라 원하는 어디든 날아갈 수 있다면 정말 멋지겠다고 생각했다. 그들뿐 아니라 소녀 자신도.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멀어지는 754를 보며 다음 바람이 고이는 날은 언제일까 소녀는 속으로 헤아려 보았다. 보트-755가 떠나는 날은, 지금까지의 통계로 생각했을 때 사흘 아니면 나흘 뒤다. 이제 민간인은 모두 떠났고 정부 관계자들만 남았으니 조금 더 빨라질 수도 있겠지. 소녀는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며 U 라인 안드로이드의 통신망에 접근을 시도했다. 755가 이륙할 시일의 정보를 탐색하며, 교묘하게 엔티타카의 서버는 뛰어넘어서.

「G?」

그러나 뛰어넘었다고 생각한 순간 손아귀가 목덜미를 붙잡았다. 스크린 위로 엔티타카의 목소리 글자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심장이 무섭게 뛰었다. 둥둥둥둥. 두두두두. 그리고 그 진동과 속도를 닮은 수송기 한 대가 저쪽에서 점점 커다랗게 모양을 키워 광장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날개에 755가 새겨진 보트였다. 

엔티타카에게 위치를 파악 당했다는 사실도, 응답할지 말지 망설이던 것도 잊고 소녀는 보트를 바라보다 멍하니 중얼거렸다. 

“뭐야, 오늘이야……?”

이내 착륙한 755의 게이트가 입을 벌리자 어시안과 안드로이드 들이 그 안으로 신속하게 줄지어 삼켜졌다. 사나흘은 여유가 있는 줄 알았는데. 최후가 지나치게 순식간에 당겨져 왔다. 

여기서 광장까지는 너무나 멀다. 755는 지금껏 보았던 수송기 중에서 가장 작았다. 탑승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테고, 전력으로 달려가도 이륙 전까지 닿을 확률은 0에 가깝다.

“젠장.”

마지막까지 755에 타지 않는 단 하나의 실루엣이, 소녀가 선 곳을 알고 있는 듯 이쪽을 향해 있었다. 곧 실루엣의 머리카락이 흩날리기 시작하며 755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젠장!”

소녀는 벽 뒤로 몸을 숨기고서 왼쪽 눈을 비집고 나온 눈물 한 방울을 우악스레 닦았다. 

모든 바람이 Q를 떠났다. 


드르르르. 

잠결에 느껴지는 가벼운 진동음에 소녀는 눈을 번쩍 열었다. 버려진 위성에서 근 한 달 움직이는 것의 기척을 전혀 모르고 지내다가 들린 희미한 발소리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소녀는 눈앞의 인영을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 기다시피 몸을 뒤로 끌었다. 

“나예요. G.”

어둠 속에서 어깨를 지긋하게 눌리는 바람에 소녀는 으악! 비명을 질렀다. 익히 아는 목소리였지만 기다리지는 않았던 상황이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성큼 다가온 상대가 드디어 달빛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스마는 Q의 달이다. 곧 사라져 버릴. 그리고 안드로이드라면 모두 똑같이 지닌 은빛 눈동자가 아스마처럼 빛났다. 엔티타카다.

“한참 찾았습니다.”

“싫어!”

손을 쳐 내 밀치며 소리쳤다. 그래도 엔티타카의 얼굴은 변함없이 담담했다. 소녀가 따지듯이 쏘아붙였다. 

“웃기지 마 로봇. 너, Q 탈출하기 전에 샘플 채취하고, 겸사겸사 불법 클론도 하나 가져가 공로라도 세우고 싶은 모양인데! 그렇게는 안 돼.”

엔티타카는 여전히 가벼운 모터 소리만 내며 소녀의 고함을 가만히 들었다. 그 이유를 말해 보라는 뜻 같기도 했다. 

“BF는 절대로 둘 못 태워.”

“네?”

엔티타카가 되묻자 소녀가 하하 웃었다. 기분이 좋아서는 아니라, 엔티타카의 허를 찔렀다는 만족감에서였다. 그리고 자신을 사로잡은 두려움을 떨쳐 낼 방법은 지금으로서 그 하나뿐이기도 했다. 

“버터플라이에는 절대로 너랑 나, 둘은 못 타. 적재량 초과로 이륙 불가라고.”

엔티타카도 그 사실에는 바로 수긍했다. 연약한 버터플라이호가 비상 상황의 대기 상태와 압력을 이겨 내고 한 사람조차 제대로 구출할 수 있을지 스스로도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 체포할 생각은 꿈에도 마.”

이번에는 엔티타카가 웃었다. 

“그건 걱정 말아요 G. 난 꿈을 꾸지 않거든요.”

“…….”

농담할 여유가 있다는 뜻은, 이 만남이 그리 불길한 것이 아님을 안드로이드도 클론도 잘 알았다. 엔티타카가 폐허의 전리품을 건지러 온 것이 아니라는 것도. 

한참 서로의 눈동자를 살피다가 소녀가 먼저 물었다. 

“왜 왔어, 그럼?”

“실은 부탁이 있어요.”

한 번 감추었던 속마음을 털어놓을 때에야 쓰는 ‘실은’이라는 말을 엔티타카는 처음 입에 담아 보았다. 묘한 기분이었다. 감추어야 할 것은 영원히 감추고, 말해야 할 것은 즉시 발화해야 하는 안드로이드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소녀의 눈빛이 신중해졌다. 탄생한 이래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어 본 일이 없는 그녀에게도 ‘부탁’은 생소한 말이었다. 

그동안 서로의 전파에 간섭하지 않은 지 한 달 반이 흘렀다. 그리고 엔티타카는 몇 시간 전 터미널로부터 긴급 통보를 받았다. 날이 밝기 전 아스마는 운석과 충돌한다. 약간 틀어진 궤도가 시일을 상당히 앞당겼다. 

“G. 나도 Q 바깥으로 나가 본 일이 없어요. U-20K 시리즈 안드로이드는 모두 Q에서 생산되었으니까요. 내일 샘플을 가지고 터미널로 가면, 승진을 하고 아마 다른 행성으로 배치 받아 또 같은 임무를 수행할 겁니다.”

“당연하지, 안드로이드니까.”

“그래서 당연이라는 근본을 제거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무슨 말이야?”

“G는 기계를 잘 이해하니까 내 몸체에 있는 블랙박스를 제거해 주세요. 그러면 터미널과 연결된 신호가 끊어질 거예요. 그게 부탁입니다.”

엔티타카는 소녀를 등지고 돌아서 제 척추를 노크하듯 톡톡 두드렸다.

“저기, 그건 내가 너를 불법 로봇으로 개조한다는 뜻 아니야?”

“그렇습니다. 법적으로는요.”

“나보고 네 탈주를 도우라고?”

소녀가 어처구니없어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내가 얻는 건 뭐냐는 뜻이기도 했다. 어차피 죽을 거 안드로이드 하나 독립시키고 죽으라는 뜻인가? 이기적인 건 어시안만인 줄 알았는데, 그 밑에서 배운 안드로이드는 더 악질이다.

등을 보였던 엔티타카가 다시 돌아서더니 소녀를 바로 내려다보았다. 

“필요 없는 무게를 제거하면 G도 BF에 탈 수 있어요.”

“……뭐?”

“블랙박스 무게가 15킬로그램, 오른팔, 왼팔 각각 10킬로그램, 그 셋이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G 몸무게 몇 킬로그램이죠?”

안드로이드는 무표정한 얼굴로 뺄셈과 덧셈을 말했다. 제 임무와 15년의 기억과 두 팔을 버리고 대신 가져가겠다는 그것이 소녀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주 단조롭고 따뜻한 계산으로.

“왜, 나를?”

“달아나기 싫어서요. 난 달아난다는 말이 참 싫더라고요.”

“…….”

“그런데 G와 터미널로 갈 수는 없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도망치는 것뿐입니다.”

소녀의 호흡이 느려졌다. 안드로이드보다 더 차갑던 사람의 기억이 났다. 어느 날 다급하게 가방을 꾸려 아파트를 떠나던 그. 문을 닫고 나가던 순간까지 단 한 번도 소녀가 있는 곳을 돌아보지 않았던. 작업대에서 마지막으로 깜빡했던 손목시계를 챙기면서도, 소녀와는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던.

소녀는 매워지는 눈을 깜빡이지 않으려고 애쓰며 엔티타카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넌 어디로 가고 싶은데, 로봇?”

소녀가 엔티타카의 셔츠를 걷어 올리고, 드러난 등에 단단하게 조여져 있던 나사못을 풀었다. 안드로이드의 부품을 만져 본 적은 없지만 뭐든지 처음은 있는 법이니까. 등 전체를 감싼 뚜껑을 들어내니 은근하게 들리던 진동음이 한층 강하게 들려왔다. 엔티타카의 심장이다. 

“엔티타카라고 불러 주세요.”

“알았어. 엔티타카.”

블랙박스는 엔진 바로 위에 있었다. 손바닥만 한 상자의 무게가 상당했다. 소녀는 조심스럽게 전선을 분리해 블랙박스를 떼어 냈다. 기계장치는 겉모양은 달라도 그 속내는 원리가 크게 다르지 않아 이내 적응할 수 있었다. 

“아직 모르겠어요.”

넬라가 말해 주었던 행성과 위성이 몇 군데 있었지만, 눈에 띄는 곳으로는 갈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오래 생각할 수도 없을 것이다.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아마도 버터플라이를 띄워 놓고 앞이 보이지 않는 대기권을 벗어난 후에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녀는 블랙박스를 창밖으로 힘껏 내던지며 말했다. 

“난 어디든 좋아.”

그리고 다음으로 엔티타카의 오른팔을 분리하고, 마지막으로는 왼팔을 떼어 냈다. 그리고 소녀는 왼팔에 장착되어 있던 엔티타카의 스크린 장치만 따로 분리해 냈다. 소녀의 몸집은 그리 크지 않고, 긴 머리카락을 잘라 낸다면 스크린 정도는 더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절대 이것은 두고 갈 수 없다. 나중에 어디에 도착하든지 다시 안드로이드 신체 부품을 구해 엔티타카를 온전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때 선물할 것이다. 언제라도 서로가 얼마나 떨어져 있어도 통신으로 닿을 수 있도록.

“정말로 다 좋은데 말이야. 딱 하나는 있으면 좋겠어.”

소녀는 자신의 작은 크로스백에 스크린 장치를 소중히 담으며 말했다. 

“시원한 바람.”

그 말과 동시에 건물이 미세하게 요동했다. 열어 놓은 창으로 열기가 서서히 밀려들어 왔다. 진동과 열기가 점점 짙어진다. 두 사람의 눈동자가 같은 리듬으로 흔들린다. 아스마가 무너지고 있다.

“가자! 엔티.”

G는 바닥에 앉은 채인, 이제 두 팔이 없는 엔티타카의 허리를 힘껏 끌어안아 일으켰다. 그럼에도 안드로이드의 무게는 상당해 시간이 한참 걸렸다. 팔이 없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꽤 성가시게 하는구나, 엔티타카는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행히 소녀는 지금 이 역할을 기꺼이 즐기는 중이었다. 바람을 기다리며. 

소녀는 먼지 낀 화장실 거울 앞에서 허리까지 나풀거리던 긴 머리카락을 가위질 몇 번 만에 슥슥 잘라 냈다. 거울에 비친 얼굴에 주근깨만큼이나 웃음기가 가득했다. 행복이라는 말을 아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Q의 바깥에도 그것은 있을 것이다. 

“어차피 버터플라이는 G가 조종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둘은 잃어버린 팔에만 어울리는 숫자가 아니라고 엔티타카는 생각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숫자라는 것을.

“원하는 데로 가요.”

엔티타카는 첫 선택의 순간, 소녀를 닮은 커다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연여름───

소설과 시를 종종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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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소설 씁니다. 개인 브랜드 ‘미씽아카이브’를 운영합니다. 404.error.missi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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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사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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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틀렸고 지금도 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