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된 공기. 그르렁거리는 낮은 목소리. 코를 찌르는 악취. 피부를 찌르는 따가운 시선. 죽어 버린 도시가 존재를 드러낸다. 그 한가운데서 나는 돌연 눈을 뜬다. 그르르렁……. 안와에 간신히 매달린 눈이 나를 쳐다본다. 새빨갛게 물든 혈관이 동공을 중심으로 나무뿌리처럼 뻗어 있다. 그것은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물이끼색으로 물든 몸을 움직인다. 욕심만큼 몸...
“누나. 저기 사람이 있어.” 용기가 바위틈을 손가락질했다. 초롱은 뚜껑이 빨간 들통을 내려놓고 용기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봤다. 낙엽이 쌓인 산길 사이에 큼직한 가방을 멘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초롱은 빨갛게 자국이 난 손으로 코밑을 훑었다. “죽었을 거야. 그냥 가자.” “움직이는데?” 용기는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일어나지 않았다. 가만 살펴보니 가방이...
⍉ 청명한 날이었어요. 태풍이 올 거라더니 보기 드물게 하늘이 갠 날이어서 분명히 기억해요. 주말이고 번화가였지만 사람이 많지는 않았어요. 다들 약속을 취소한 거죠. 별로 습하지도 않고 바람도 많이 불어서 카페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어요. 먼저 목소리를 높인 건 남자였어요. 사실 남자 혼자 계속 소리를 질러 댔어요. 여자는 남자가 윽박지르는 소리를 듣기...
“뭐가 잘 안 풀려?” 성패가 물었다. 도마는 등받이에 체중을 실어 두 발로 세운 의자에 앉아 균형을 잡다가 성패를 쳐다봤다. 성패는 커피포트로 끓인 물을 머그 컵에 따르고 있었다. 허연 김과 함께 커피 향이 머그 컵 너머로 흘러나왔다. 도마는 성패를 멍하니 바라봤다. 8월 중순인데 뜨거운 커피라니.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작업실에서. “뭐 때문에 그래?” ...
16세기. 제국주의 스페인 왕국은 라틴 아메리카를 침략했다. 창칼과 화약 모두 치명적이었지만 가장 끔찍한 피해를 불러온 것은 병균이었다. 침략자와 함께 건너온 천연두가 라틴 아메리카 전역을 휩쓸었다. 라틴 아메리카 침략은 인간과 인간의 전쟁인 한편 인간과 병균의 전쟁이기도 했다. 22세기. 인류는 다시 한 번 혹독한 전쟁을 경험했다. 시범형 개척 행성 두 ...
마지막 마침표를 찍어 넣기 전에 보경은 손가락을 떨었다. 새끼손가락이 미련을 떨쳐 내듯 파르르 경련했고, 마침내 검지가 마침표 자판을 때렸다. 오래된 타자기가 낮게 울었다. 탁자를 타고 흐른 미약한 진동이 사라지고 나서야 보경은 미루어 두었던 숨을 터트렸다. 이제, 이제 정말. “끝났다.” 보경이 타자기에 물려 둔 종이를 집어 들었다. 덜덜 떨리는 손이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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